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논란 (문단 편집) === 초동대처 문제 === 해경의 초기 상황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초기 대응이 심각했던 것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JTBC]] [[http://news.naver.com/main/read.nhn?oid=437&sid1=102&aid=0000040249&mid=shm&mode=LSD&nh=20140506230130|보도]][[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75225|내용]]. * 사건발생 40분 뒤 최초 보고서. 세월호가 절반 이상 기울었던 시점에서 해경이 보낸 보고서는 '침몰할 가능성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정도다. *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된 이후인 10시 23분의 2번째 보고서. 10시에 '해경과 해군 함선 33척과 항공기 6대가 10시부로 동원됐다'고 보고. 실제 현장에 있던 것은 구조정 한 척과 헬기 2대. * 11시 25분 세번째 보고서. '162명 구조'라고 강조 언급하면서 '''정작 나머지 3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완전히 침몰한 함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락'''. 초기에 모두 구조했다는 언급이 나온 배경으로 추정됨. 이런 보고서들을 받은 행안부 장관은 공식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 이런 보고서만 들어왔다면 도대체 이게 심각한 사건이란 인식을 할 수가 없다. 전원구조 보도가 나올 때, 교육청 등도 이런 글을 돌렸는데 이게 자기들도 몰랐기 때문이었다는거다. 또한 해경의 구조 과정도 골치아픈데, 당시 학생들은 해경 구조 헬기 도착을 알았다. 그래서 구명조끼를 입는 등의 준비는 했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것처럼 방송에서 그대로 대기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해경 구조정의 구조장면을 보면 해경이 도착한 것은 구조선 한 척에 헬기 1대가 '''40분을 보냈다'''. 이 시간동안 해경은 대부분의 시간동안에 구명보트 한척만을 왕복시키면서 인명을 구조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구조된 사람은 극소수. 그리고 단 한번 직접 선체에 접근했을 때에는 선실이 있는 선미가 아니라 조타실이 있는 선수로 접근해서 오직 승무원 7명만 구조했다. 이후 민간어선이나 어업지도선들이 선미로 붙기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배는 침몰했다. 가장 중요한 침몰 직전 시간 동안 극 소수의 인원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 해경 구조의 전부인 것. 이런 부분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전에는 모든 책임이 선원들에게 갔지만, 이런 점을 고려하면 당연히 책임의 상당수는 선원들이라도 해경도 책임논란을 피할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책임 논란이 선원들에게만 극딜 되엇던 것이 해경의 책임 문제와 안이했던 초기 대응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느냐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검찰은 '''해경이 선체 진입해서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사고를 키웠다'''라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55&aid=0000277929|판단]] 해경을 수사한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이 기막힌 구조과정 때문에 해경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8&aid=0002231292|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하기로 한 듯.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